우리말 파괴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신조어와 줄임말, 합성어는 외계의 언어처럼 난해하다. 집중호우로 반지하 일가족 참사 후 열악한 한국의 주거 환경을 상징하는 합성어 ‘지옥고’(반지하·옥탑방·고시원)가 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정치권의 신조어는 정치를 더욱 혐오스럽게 한다. 한여름 더위를 식혀주는 시원한 수박이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을 지칭’하는 천박한 정치용어로 변색됐다. ‘개딸’(개혁의 딸) ‘양아’(양심의 아들)’가 보통명사처럼 쓰인다. 4050세대를 향해선 ‘개삼촌’ ‘개이모’로 갈라치기 한다.
TV연예프로 자막도 헷갈린다. ‘머선 129’는 경상도 사투리 ‘무슨 일이고?’라고 소개한다. 신문도 뒤질세라 줄임말과 유행어를 여과 없이 쓰고 있다. MZ세대의 줄임말은 난이도가 더 심하다. ‘쉽살재빙’은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 빙고’라고 한다. ‘버카충’은 교통카드 충전이고, ‘낄끼빠빠’는 낄데 끼고 빠질데 빠져라‘인데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알잘딱깔센’은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의 줄임말이다. 친구들끼리 다양한 상황에서 너도나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 뒤 S전자의 ‘가전제품’, 뷰티 브랜드, 패션 브랜드 등에서 광고 카피로 활용하면서 소비자의 마음까지 사로잡은 용어가 됐다. 재벌 총수도 정부 과련 회의에 참석해 ‘알잘딱깔센’을 사용하여 주위를 놀라게 했다는 보도가 나올 만큼 보편화 됐다.
Z세대 직장인과 소통하려면 이 정도는 알아야한다는 신조어가 ‘갓생살기’다. 영어 ‘God’과 ‘인생’을 합쳐 만든 합성어로 ‘부지런한 삶을 산다’는 긍정적 의미다. ‘일며든다’는 ‘일이 내 삶에 스며들었다’의 줄임말로 워라벨과 일과 삶의 분리가 명확한 Z세대 특성 상 부정적인 의미에 더 가깝다.
‘갑통알’도 씁쓸하다. ‘갑자기 통장을 보니 알바(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는 줄임말로 취준생이 사용하던 신조어라고 한다. 순식간에 빠져나간 월급을 보면 생각나는 단어로 확장되면서,‘부족한 생활비 마련을 위해 투잡을 뛰어야 겠다’는 의미다. 경제적 활동과 삶에 대한 Z세대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자음표기 신조어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ㄱㄷ’(기다려) ‘ㅇㄱㄹㅇ’(이거레알→이거진짜)은 암호 같다. 한글표기도 뒤죽박죽이다. ‘일해라 절해라(이래라 저래라)하지 마세요’ ‘미모가 일치얼짱(일치월장)’, ‘곱셈(꽃샘)추위’, ‘괴자(계좌)번호’ ‘낳아라(나아라)’등 차고 넘친다. 세종대왕이 노할 만큼 언어 파괴가 심하다.
일본에서도 한류 영향으로 1020세대를 중심으로 ‘한일 믹스어’가 유행이라고 한다. ‘알앗소데스’(알았어요), ‘마지 고마워(정말 고마워), ’진짜 소레나(진짜 그럼)‘ 등 일본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사용하는 신조어다. 은근히 우쭐해지는 문화현상이다,
줄임말은 시간을 절약하며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신조어는 풍자와 유머로 메말라가는 인터넷 세상의 윤활유 구실도 한다. 줄임말과 신조어가 빠르게 진화하면서 세대 간 소통의 장애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남용은 모자람만 못하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