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땅 청산도의 초분(草墳)을 취재한 것은 30년 전이다. 초분은 관을 풀이나 짚으로 덮어 만든 무덤이다. 청산도에서는 초빈(草殯), 초장(草葬), 또는 고름장, 구토라고도 한다. 당시에 만난 50대 후반의 상주는 마루에 아버지의 빈소를 차려놓고 아침저녁으로 상식(上食)을 올린다. 초분은 사립짝에서 멀지 않은 돌담 옆이다.
초분의 구조는 단순한 듯 복잡하다. 잡석을 모아 관 형태로 돌 축대를 만든다. 그 위에 나무토막을 깔고 관을 놓는다. 관 위에 생솔가지를 얹고, 볏짚으로 마름을 엮어 덮고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새끼줄로 야무지게 묶어 놓았다. 2∼3년 뒤 오물이 빠지고 백골만 남을 때 이장하여 무덤을 만든다. 두 번의 매장 절차를 거치는 복장(複葬)이다.
번거롭게 초분을 하는 건 시신의 오물을 빠져 나가게 한 뒤 깨끗한 백골만을 땅에 묻어야 한다는 의식이 남았다. 부모가 돌아가셨는데 바로 묻는 것은 불효라는 인식도 뿌리 깊다. 우리나라 서남해안과 섬 지방의 오래된 풍속이다. 지금은 청산도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장례 풍습이다. 영화 ‘서편제’ 촬영지 부근 해안 언덕에 관광용으로 1기를 조성해 놓았다.
우리나라 장례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2005년을 기준으로 화장이 매장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좁은 국토에 고령화 추세, 장례 절차의 간소화가 변화 요인이다. 지난해 화장률은 90.5%로 10명 중 9명이 화장을 이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남골묘나 납골당 대신 수목장과 잔디장 같은 자연장이 느는 것도 변화의 추세다. 자연장지(수목장)는 지난해 3만 4463건으로 친환경 쪽으로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화장 후 유골을 바다에 뿌리는 해양장까지 등장했다. 정기국회에서도 화장시설 확충은 물론 자연장지 조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최근 미국 캘리포니아 주(州)가 인간의 시신을 거름용 흙으로 만드는 ‘퇴비장’ 법안을 통과시켰다. 시신을 철제 용기에 담아 풀과 꽃, 나뭇조각, 짚 등 생분해 원료를 넣은 뒤 6∼8주간 바람을 통하게 해 미생물과 박테리아가 시신을 천천히 자연 분해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캘리포니아가 퇴비장을 도입한 이유는 극심한 기후 변화로 폭염과 산불, 가뭄이 해마다 이어지자 장례 방식도 탄소 배출을 조금이라도 줄이려는 고육지책이다. 매장이나 화장에 따른 환경오염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장례로 떠올랐고 2027년부터 시행한다. 이미 미국 여러 주가 도입했고 확산되는 추세다.
반대 여론도 녹록치 않다. 특히 종교단체의 반발이 거세다. “퇴비장은 인간을 일회용품으로 만드는 것”이라 주장하며 “매장이나 화장이 고인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보편적인 규범”이라고 강조한다.
어쨌든 장례의 화두가 친환경으로 쏠리고 있으며 이를 ‘녹색 죽음’이라고도 한다. 영국에선 시신을 가수분해기 통에 넣어 서너 시간 만에 뼈만 남기고 살을 녹이는 장례법이 등장했다. 머지않아 “나 죽거든 거름으로 뿌려다오”라는 유언이 나옴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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