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와 함께 느는 것이 쓰잘데기 없는 논쟁이다. 늙은이 몇 사람만 모여도 삐걱거리는 세상을 질타하느라 술자리가 시끄럽다. 청력이 떨어지는 만큼 목청이 높아져 주위의 눈총을 받기 일쑤다. “뉴스를 안 보면 되지, 왜 보면서 스트레스 받고 열 받는가?” 침묵을 지키던 선비 같은 지인이 일갈한다. 그렇다고 쟁이 출신들이 뉴스를 외면하고 살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는 남들이 뉴스나 유튜브를 접하는 시간에 “클래식을 듣거나 DVD로 흘러간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는다”고 한다. “클래식” 참 오랜만에 듣는 말에 심장이 울렁거린다. 일상에 쫒기고 바쁘다는 핑계로 클래식 음악을 들은 지 아득하다.
직장에 다닐 때는 제법 덩치 큰 오디오 시스템을 갖춰놓고 가끔 들었는데 언제 왜 없앴는지 기억조차 없다. 세파에 휩쓸리며 세속화된 탓이다. CD가 출시될 때 클래식 전집을 샀지만 지금은 책장 귀퉁이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다.
“클래식을 듣는다”는 말을 들은 뒤 컴퓨터용 스피커 두 개를 적당한 높이로 벽에 걸고 CD나 유튜브를 통해 가끔 클래식을 듣는다. 옛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클래식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게 된 계기는 병영생활을 서울에서 할 때다. 외출을 나오면 종로 1가 영안빌딩 4층 고전음악감상실 ‘르네상스’에 들러 베토벤과 쇼팽, 모차르트와 브람스를 만났다.
그곳은 병영생활의 애환을 품어주던 아늑한 둥지였다. 클래식은 불안과 고통을 경감시키는 묘약과 같아 안식과 편안함이 깃든다. 눈을 감으면 시공을 넘나들며 외로운 영혼과 만나는 판타지아에 빠져든다. 홀로 음악을 들으면 영혼이 자유롭게 유영하며 맑아진다. 즐겨 듣던 신청곡은 베토벤의 ‘로망스 제2번 F장조’. 아름답고 서정적인 클래식 소품의 백미다.
말과 글이 공해가 된 세상에 ‘말 없는 예술’을 즐기는 중년 남성들이 부쩍 늘었다고 한다. 대중적이고 동적(動的)인 영화, 가요, 뮤지컬 보다 미술과 무용, 클래식 음악과 박물관 등 비(非)언어 예술을 선호하는 경향이다. 말을 하지 않아도 되고, 듣지 않아도 되니까 마음이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진다는 게 이유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설문조사에 따르면 성별 관계없이 20대(29%)가 가장 많이 관람하지만, 자주 방문한다는 남성 응답자 가운데 40대(39.2%)와 50대(38.2%)가 20대(24.9%)보다 월등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말과 글을 피해 나홀로 여가 생활을 즐기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다.
이병률 시인은 산문집 ‘혼자가 혼자에게’서 나홀로 여행을 권한다. 책 속에서 작가는 혼자여행하고, 혼자 걷고, 혼자 적막의 시간에 놓인 채 그 시간을 귀하게 보낸다. 홀로 떠나면 ‘없는 사람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고, 똑 같은 이야기 따위를 듣지 않아도’ 되니까 좋다는 게 이유다. 상큼하고 담백하다.
한 해의 마지막 일요일, 오랜만에 베토벤의 ‘로망스 제2번 F장조’를 다시 든는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바이올린 선율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오케스트라와의 조화에 평화가 깃든다.
나만의 시간에 나에게 슬쩍 말을 걸어본다. 속내를 털어놓는 만큼 위로의 말로 나를 다독인다. 헝클어진 마음을 빗질한다. 잡념이 깃털처럼 가벼워진다. 혼자 있는 시간이 참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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