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 사회에서 올해의 인물을 꼽는다면 배우 이순재다. 구순을 바라보는 그는 요즘 연출 작업에 푹 빠져있다. 12월 21일 서울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개막해 2023년 2월 5일까지 공연하는 안톤 체홉의 <갈매기>를 원작 그대로 올리기 위해 요즘 연습실에서 24명의 배우들과 앙상블을 다지고 있다.
연출만 하는 게 아니다. 요즘 대학로에서 백일섭 노주현 등과 연극 <아트>에 출연하고, 틈만 나면 손숙 정영숙 등과 <장수상회>, <사랑하는 당신>의 지방 공연도 다닌다. 장나라 등이 출연하는 TV드라마를 촬영 중이고 대학 강단에도 서고 있다.
연기하기에도 벅찰 그가 왜 연출까지 하는 것일까? 혹자는 노욕(老慾)아니냐고 하지만 그는 필자에게 열정적으로 말했다. “무엇보다 원작 그대로 공연해보고 싶었어요. 지난해 출연한 <리어왕>도 원작대로 했듯이 체홉 희곡의 주옥같은 대사들을 관객에게 들려드리고 싶었어요. 둘째로는 제 나름대로 <갈매기>를 해석하고 싶어서입니다. <벚꽃동산>, <바냐아저씨> <세 자매> 등 체홉의 작품들은 인간의 욕망과 비극적인 삶을 희극으로 그려내고 있지만, 저는‘혁명’으로 풀어야 한다고 봐요. 당시 체제와 병든 사회를 개혁하려는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살리고 싶어요.”
그렇다고 연출을 보이게 하기보다는 배우들이 원작의 대사를 정확한 화술로 명쾌하게 전하는 배우의 예술을 보여주겠다고 그는 덧붙였다.
안톤 체호프 희곡 ‘갈매기’ 연출 맡아 주옥같은 대사 그대로 들려주고 싶어“ <갈매기>에서 이순재 배우는 인기가 쇠퇴한 여배우 아르까지나의 오빠이자 대지주인 쏘린 역을 개성파 배우 주호성과 더블로 맡는다. 이 작품에는 이항나 소유진 오만석 김수로 강성진 이경실 고수희 등과 함께 젊은 배우들이 출연해 신구의 조화를 이룬다.
필자는 80대 이순재 대배우의 지난 10년을 지켜봐 왔다. 달리는 기차처럼 그는 멈춤이 거의 없었다. 2016년 데뷔 60주년 기념으로 아더 밀러의 <세일즈맨의 죽음>에서 윌리 로먼 역을 맡아 긴 대사를 막힘없이 소화하며 저력을 발휘했다. 연습 첫날 이순재 배우는 영어 희곡을 들고 와 원작대로 하자고 했다는 일화는 그의 실력과 집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그는 예술의전당에서 데뷔 65주년 무대로 셰익스피어의 <리어왕> 타이틀 롤을 맡아 3시간 20분의 대작을 더블 없이 연장공연까지 해내‘세계 최고령 리어’라는 찬사를 들었다.
젊어서부터 술 담배 안하고 자기 관리를 해왔다고 하지만 그의 대사 암기력과 무대에서의 체력은 정말 대단하다. 드라마 촬영을 하면서 연극 2~3편으로 지방순회 공연을 다니는 그에게 언젠가 필자가 물었다.
“어떻게 그 많은 대사를 헷갈리지 않고 기억하냐?”고 했더니 “이동 중인 차 안에서 대본을 훑어보지만, 대사가 몸에 배어있어 어려움은 없다”고 했다.
쉬지 않고 일하는 것이 건강비결이라는 이순재 대배우의 고속 행보는 2023년에도 지속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