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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일행 / 비에 젖은 가랑잎이 되었다
2023년 01월 04일 10시 03분 입력

 

▲이형균<전 경향신문 편집
국장. 본회 자문위원>

 

아내 곁에 착 달라붙어 뒤늦은 행복

사람들이 좋아 술 마시며 가정 소홀

나는 20대에 신문기자가 되어 수습과정을 마치자마자 정치부에 배속되었다. 지금 서울 태평로 서울시의회 자리에 있던 제6대 국회를 시작으로 7.8.9대 국회와 청와대에 출입기자로 나가면서 정치라는 특이한 세계를 접하게 되었다. 

 

공화당과 민주당 등 각 정당의 윤보선, 정구영, 백두진, 곽상훈, 윤제술, 이효상, 정일권, 정일형, 박순천, 유진산,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 씨 등 거물 정치인은 매일 만나는 취재원이었다. 더욱이 장택상, 이범석, 이인, 김홍일, 김도연, 윤길중, 김두한 씨 등 해방정국의 인사들을 수시로 만나 취재하는 것은 경이스러운 일이었다.

 

신문기자는 일반 회사 사원과는 달리 출입처가 또 하나의 직장이어서 매일 만나는 대상이 다양해 “세상에 이런 직업도 있나?”라고 스스로 경탄하고는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일 저녁 퇴근 후에 술자리가 계속되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취재원과의 술자리는 물론이지만 개인적으로도 동료나 후배 기자들과 어울리는 것이 좋아 집에 일찍 들어가는 일이 별로 없었다. 퇴근 후에도 후배들을 이끌고 2차, 3차를 가거나 예고도 없이 집으로 몰고 가서 “빨리 술상 차려오라”고 신혼 때인 아내에게 다그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부엌의 냉장고 안에는 안주거리는 물론, 소주, 맥주, 정종, 고량주 등 다양한 술이 항상 비치되어 있었다. 조니 워커 등 양주도 넣어 놓았다.

 

이런 일로 인해 집사람과 애들하고 다정히 손잡고 영화구경을 하거나 여행을 하는 일이 거의 없어 가족들에게는 하숙생처럼 여겨졌다. 집사람이 딸을 넷을 낳을 때마다 한 번도 병원에 들린 적이 없어 원망을 사기도 했다. 넷째를 낳았을 때 집사람이 울먹이면서 전화를 했다. “같은 입원실에 모 방송 뉴스 앵커 부인도 출산을 해서 함께 있는데 방송 일에 바쁜 그의 남편은 매일 낮에 들려서 부인을 위로해 주고 가는데 당신은 코빼기도 안보이니 이럴 수가 있느냐?”고 원망했다.

 

아버지가 해방 전에 ‘개벽’잡지의 필진(지금의 기자와 같은 직)이어서 그 피를 이어받아 가정을 돌보지 않는 것이려니 내 딴에는 핑계를 삼았다.

 

세월이 흘러 이제 은퇴하고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자 나는 지난날들의 행동이 후회스러워 되도록이면 아내 곁에 있으려고 작심을 했다. 그래서 얼마 전 관훈클럽이 마련한 경북 영주 부석사 탐방 때 집사람 손을 꼭 잡고 산길을 오르기도 했고, 경향신문 사우회가 주최한 충북 제천 문화탐방에도 함께 참여했다. 또 대한언론인회 산악회가 추진한 청와대 방문 때에도 집사람과 시종 팔짱을 끼고 산책했다. 이런 모습을 눈여겨 본 선후배들이 “보기 좋은 모습”이라고 평을 하거나 애처가라고 추켜 주어 쑥스러웠다.

 

또 올해 초부터 오후에 집사람과 동네를 한 바퀴 돌며 하루에 7천보씩 걷는 것으로 건강을 챙기기도 한다.

이제 나는 늘그막에 비에 젖은 가랑잎처럼 와이프한테 착 달라붙어서 한시도 떨어지지 않고 여생을 함께 보내려고 한다. 이것이 나로서는 소일행이 아니라 결코 중단할 수 없는 대일행이라고 단언해도 좋을 듯하다.

 


이형균<전 경향신문 편집국장. 본회 자문위원> kjnews@kjnews365.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