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 앞 다퉈 모방

집콕족 광고 겨냥 베끼기 흉내 예사...표절 소송전

가요프로그램 많은 KBS·MBC도 모방 공영은 뒷전

 

 

 

‘트로트가 좋다’, ‘듣기만 해도 즐겁다’, ‘이처럼 신날 수가 없다’, ‘구성진 곡조에 힘든 일상의 위로를 받는다’…딱히 애호가가 아니더라도 트로트에 대한 예찬을 늘어놓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트로트는 우리의 삶속에 오래 전부터 그만큼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20∼30년대 일제 강점기, 무섭고 어두운 터널에 갇혀 있을 때부터 광명천지, 오늘에 이르기까지 트로트는 늘 우리 민족 모두의 눈물과 한숨, 웃음과 환희의 샘물이자 길동무이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이 글은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트로트의 역사와 원류를 알아보려거나 트로트가 갖는 문화적 의의, 역할 · 영향 등을 따져보자는 것은 전혀 아니다. 또한 쉽사리 식을 것 같지 않은 트로트 오디션 프로에 대한 시청자의 환호에 찬물을 끼얹거나 재를 뿌리려는 의도는 더더욱 아니다.

게다가 필자는 30여년 간 기자 생활을 했다곤 하지만 음악이나 미술 등 문화기사를 다뤄본 경험이 전무이다시피 해 사실 이런 주제를 다루기가 무척 조심스럽기까지 하다.

열풍인가? 광풍인가? TV 채널 휩쓸고 있는 트로트

1년 넘게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지구촌 모든 이들을 이른바 ‘집콕 족’으로 만들고 있다. 노약자들은 말할 것 없고 가장 활동적이어야 할 직장인조차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어쩔 수 없이 각자의 집안에 갇혀 일할 때가 많다. 

새싹처럼 팔팔한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더더욱 딱하다. 학교나 유치원, 어린이집도 문을 닫아 버렸고 놀이터, 동물원, 물놀이 장도 모두 빗장을 내려 도대체 갈 곳이 없어져버렸다. 모두가 집안에 갇히다시피 살아가다 보니 자연 자주 손이 가는 것이 TV 리모컨이다. 그만큼 TV시청 시간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러한 언택트 시대의 구원자처럼 지난해부터 돌풍처럼 TV채널을 휩쓸고 있는 프로그램이 ‘트로트 오디션’이다. TV조선이 내보낸 ‘미스트롯’과 뒤따른 ‘미스터트롯’이 가히 폭발적이라 할 만큼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방송채널이 온통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으로 뒤덮이다시피 하고 있다. 

케이블 채널에서부터 불기 시작한 트로트 열풍은 급기야 공중파 방송채널까지 뒤흔들어 뜨거운 바람은 이제 트로트 광풍(狂風)으로 바뀌어버렸다. 민영 · 공영 채널 구분 없이 너도나도 트로트 프로그램 제작에 열을 올리고 있다.

채널 이름까지 들먹이다 보면 너무 너절해질 것 같아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명만 늘어나 보자. ‘미스트롯’, ‘미스터트롯’, ‘뽕숭아학당’, ‘사랑의콜센타’, ‘보이스트롯’, ‘트롯파이터’, ‘나는 트로트 가수다’, ‘내게 ON 트롯’, ‘싱어게인’, ‘트롯신이 떴다’, ‘트로트의 민족’, ‘트롯전국체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이어진다.

이래도 되는 것인가? 우후죽순, 여름철 소나기도 아닌데 이렇게 중구난방(衆口難防)처럼 마구 쏟아내도 괜찮은 것일까? 그야말로 ‘트로트 대격돌’ 모양새다.

‘그래도 시청률만 잘 나온다는데, 그만큼 사람들이 좋아하고 또 많이 본다는 것 아닌가?’, ‘그러면 됐지` 뭐 어때?’, ‘한 때겠지! 좀 지나면 또 시들해질 텐데 뭐…’ 보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만인이 트로트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코로나 회오리 속,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이 많은 시청자들의 답답함을 풀어준 긍정적 역할을 해준 것은 맞다. 듬뿍, 시청자의 사랑을 받는 이런 프로그램이 한 방송사에 독점될 수 없다는 것 역시 수긍이 가는 말이다. 변형되거나 더 발전된 포맷으로 신선함이 더해진 새 프로그램이 만들어진다면 꼭 꼬집어 비난할 일도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밥에 그 나물’, 프로그램에 담겨지는 콘텐츠, 알맹이이다. 차별화 고민은 하지 않은 채 베끼기나 흉내 내기로 양산되는 유사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식상함을 더해 준다. 흥미를 돋우기는커녕 오히려 짜증과 피로감만 안긴다. 터진 봇물처럼 쏟아지는 트로트 프로그램 홍수는 필연적으로 ‘취향의 강요’마저 수반된다. 

지금 우리나라 방송사들의 트로트 관련 프로그램 제작과 방영 행태가 딱 이 꼴이다. 트로트 프로그램이 의외의 시청률 상승을 기록하자 이른바 인기 채널 방송사들이 풍덩풍덩 앞 다투어 트로트 웅덩이로 뛰어들고 있다. 대부분 비슷한 포맷에 독창성이나 신선함 따위는 뒷전이다.

 쉽게 광고가 붙어 돈이 된다니 너나없이 일단 발부터 들여놓고 보자는 식이다. 마치 아류 트로트 예능프로그램의 경연이라도 벌어진 듯하다.

케이블TV 채널이나 민영지상파 채널은 그렇다 치더라도 평소 공영을 표방하고 있는 KBS, MBC 조차 뒤질세라 이 경연에 뛰어든 것은 또 무엇인가? KBS는 ‘전국노래자랑’, ‘가요무대’, ‘불후의 명곡’, 그리고 MBC는 ‘복면가왕’, ‘MBC가요베스트’ 등 시청자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음악프로그램을 이미 충분히 내보내고 있지 않은가.

트로트 오디션 어린이 참여 신중해야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트로트’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면 이런 단어나 구절들이 많이 눈에 띈다. 갈등, 체념, 자학, 자기연민, 애절한 슬픔, 자신의 처지에 대한 비관, 애절한 슬픔의 노래 등이 그것이다. 

물론 트로트 전부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당연히 바뀌어 왔지만 트로트의 원류나 큰 줄기 흐름이 그렇다는 얘기이다. 대부분 희로애락을 겪어온 성인들의 애환이나 사랑, 고뇌 등이 가사의 주를 이룬다.

그러나 최근 방영되는 트로트 오디션 프로그램에 10대의 앳된 학생들이 꽤나 등장하고 있다. 심지어 10살이 채 안 되는 어린이도 TV 카메라 앞에서 트롯을 구성지게 불러 젖힌다. 기성 가수보다 ‘꺾기’를 더 잘한다는 MC의 칭찬도 쏟아진다. 

1차, 2차 관문을 통과하면 깡충깡충 뜀박질을 하는가 하면 심사에 탈락된 어린이는 눈물을 펑펑 쏟아낸다. 어릴 때부터 천재성을 발굴해 내는 것도 좋고 트로트 영재로 키우는 과정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다. 

어린이는 어린이답게 성장하는 게 최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