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면 말고”식의 무책임 보도 난무

공정하면 살고 편파·왜곡하면 죽는다

 

 

 

임인(壬寅) 새해다. 지난해(辛丑年)는 ‘하얀 소’ 등을 잘못 탔던지, 방송가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말 그대로 만신창이 한해였다. 

‘검언유착’ 논란으로 MBC · KBS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망신살이 무지갯살 뻗치듯 했고, 4‧7보궐선거는 공영성 방송들이 약속이나 한 듯 뭉텅이로 여당후보 편들기 방송을 쏟아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게다가 눈만 뜨면 뉴스는 온통 ‘COVID-19’ 융단폭격에 함몰돼, TV든 라디오는 ‘코로나’ 방역당국 발표로 도배질되다시피 했다.

‘하얀 소’는 지나가고 ‘검은 호랑이’로 바뀐 새해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제자리를 좀 잡을 수 있을까? 방송에 대한 국민의, 시청자의 해묵은 비난 화살이 좀 줄어들 수 있을까?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묘서동처(猫鼠同處)’에 이어 두 번째로 ‘인곤마핍(人困馬乏)’을 뽑았다고 한다. 

방송이 편파·왜곡에 휩싸이면 방송인도, 시청자도 모두가 힘들고 피곤해지기 마련이다. ‘방곤청핍(放困廳乏)’이랄까? 대통령 선거와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러지는 올해, 찬밥덩어리 신세로 변해가는 애물단지 방송에 대한 시청자의 신뢰를 되찾을 수 있는 묘약은 없는 것일까?

대선 혼탁부추기는 공영 방송들

3‧9대선이 불과 두 달여 앞으로 바짝 다가오면서 여·야 진영, 후보 간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이 도를 넘어서고 있다. 여느 선거전을 막론하고 의례 판을 쳐온 인신공격, 악성루머·거짓뉴스 등 자극적인 폭로전이 신문 지면과 방송뉴스를 뒤덮고 있다. 

언론들은 특종취재니 단독보도니 호들갑을 떨어대지만 출처나 근거가 모호하거나 불분명한 것이 대부분이다. 말 그대로 ‘아니면 말고’식 무책임한 보도가 너무나 예사롭게 저질러지고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선거진영 간, 후보 간 고소·고발 등 이른바 ‘법적 대응’이 이렇게 횡행할 수 있겠는가?

지난해 11월, KBS·MBC 두 공영방송사 노동조합과 일부 시민단체 등 6개 단체가 올 3월까지 한시적으로 「대선 공정방송 국민감시단」을 만들어 주간 단위로 방송 모니터링 보고서를 내놓고 있다. 

불과 몇 개 시민단체와 제한된 인력, 구성원이 내놓은 이 보고서를 전적으로 믿거나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나온 몇 차례의 보고서 내용 중에는 눈여겨보아야 할 지적들이 담겨져 있다.

“대선이 가까워지면서 공영방송사들의 편향성과 불공정 정도가 매우 심각한 수준임이 확인되었다. 이들의 행태는 매우 노골적으로, 때로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이러고도 이들 공영방송사가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공영방송이라고 할 수 있는지 국민들로 하여금 깊은 회의감을 갖게 하기에 충부하다”고 평하고 있다. 

이 감시단이 대상으로 잡은 ‘공영방송’이란 KBS, MBC 두 공중파 방송과 연합뉴스TV, YTN, TBS 등 5개 정부 및 지자체가 투자한 TV와 라디오 방송사들이다.이 보고서에는 각 방송사 이름과 프로그램명, 그리고 진행자들의 이름까지 구체적으로 나열돼 있지만 이 글에서는 개개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몇 가지 주요 내용만 간추려 본다. 

먼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관련 부분 방송 모니터 내용을 보자. “그런 상황에서 가짜뉴스니, 고발하겠다느니 하는 민주당의 입장을 전하기에 바빴다…, 마치 여당 측 말을 인용하듯 ‘흠잡을 데 없는 이력과 상징성’ 등으로 000(민주당 영입인사)을 치켜세우는 데 앞장섰다…, 여당 대통령 후보의 부인에 관한 사항은 ‘사생활’, ‘가짜뉴스’ 등의 프레임을 내세우면서, 문제의 본질은 전혀 다루지 않고 민주당의 입장을 전하기만 했다.”

이번엔 야당인 국민의힘 관련 모니터 내용이다. “야당 대통령 후보 부인에 관한 의혹은 그에 관해 구체적으로 범죄혐의가 확정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무수히 범죄가 입증되기라도 한 것처럼 보도하고 있었다…, 국민의힘 대표 잠적을 톱기사로 세우고 리포트 2개로 중점 보도하는 등 야당에 불리한 이슈를 확대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후보와 당 대표, 전 비대위원장의 한마디 한마디를 중계하듯 전하면서 온갖 자의적 해석과 편견을 섞어 넣어 (마치) ‘불난 집 부채질형’ 중계방송을 했다.”

인터뷰도 여당엔 우호적 질문

최근 발표된 모니터 보고서는 방송사들의 신종 왜곡·편파 보도방법으로 ‘인터뷰 질문’ 기법을 지적했다. 프로그램 진행자나 인터뷰를 하는 기자들의 질문 속에 의도나 편견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인사에 대해서는 국민의힘의 논리를 공격하거나 유도하는 질문으로 채우면서 민주당 당 정책을 홍보할 수 있는 우호적 질문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이에 비해 국민의힘 인사에 대해서는 ‘논란이나 발언을 공격하는 형태’로 질문을 던진다.”고 꼬집었다.

한 방송사는 같은 프로그램 안에서 “여당은 ‘청출어람’, 야당은 ‘내부갈등 고조’라는 용어를 선택”했고, “민생이 최우선이라는 여당 후보의 발언을 충실히 반영하면서도, 야당 후보에 대해서는 당일 정책 이슈를 모두 누락했고, 야당 내부 갈등을 부각하는 내용만 집중보도했다”라는 혹평을 내놓았다.

KBS의 정치적 독립선언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KBS 사장이 김의철 씨로 바뀌었다. ‘공영미디어 KBS 독립선언’이란 제목의 그의 취임사 일부를 발췌해 본다. 

“KBS만의 품격을 잃지 않고 어떠한 외압해도 흔들리지 않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신뢰를 드리는 것이 우리가 나아갈 길이다. 바로 독립성, 신뢰성, 공공성을 지키는 것”이라며 “독립성은 국민의 신뢰를 기반으로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에 이어 특히 “정치적 독립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제 변명을 거두겠다. 오늘 국민들에게 공영미디어 KBS의 독립을 선언하겠다”며 취임사에 이어 KBS공영미디어 독립선언을 낭독했다.

신임 사장의 취임 직전, KBS 이사회는 보도·제작·라디오 부문 책임자들로부터 “대선방송 공정성 확보방안”을 보고 받았다. 올해에 치러지는 대선과 지방선거 관련, ‘방송, 보도, 토론 전 분야에서 엄격한 기준·준칙을 수립해 구성원들과 책임자들이 깊이 인식하고 준수하도록 내제화하겠다’고 밝혔다.

‘대선검정 TF’, ‘체크앤체크팀’ 등 보도 전 검정 팀을 두고 조금이라도 논란의 소지나 이견이 있으면 신속보다는 ‘느린 뉴스’를 추구하겠다는 파격적 실천계획도 내놓았다.

KBS 이사회에 앞서 MBC 관리감독기구인 「방송문화진흥회」 안에서도 ‘MBC 대선모니터단’ 구성 논의가 활발히 오간 바 있었다. 야권성향 이사들의 감시단 구성의 필요성 주장에 여권성향 이사들이 ‘보도 개입’, ‘월권행위’라며 반발하기도 했지만 보도본부장으로부터 대선관련 보고를 받는 선에서 정리가 되었다.

선거 때만 되면 앵무새 노래처럼 반복되는 방송의 공정성·독립성·신뢰성 - 지금껏 모든 시청자와 유권자들의 귀에 못이 박혔을 만큼 수없이 들어온 단어들이다. KBS 신임 사장이, MBC 이사진들이 수십·수백 번을 천명한데도 아직은 허공 속의 메아리처럼 공허하게 들리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방송 100년을 불과 몇 년을 남겨두고 있는 ‘검은 호랑이의 해’인 올해,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는 제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