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국민 선택권 존중”지원 발언 ‘보수정당 악마화 드라마도 구설수
‘혹 떼려다 (오히려) 혹 붙였네!’ 흔히 듣는 말이다. 요즘 KBS가 딱 그 꼴이다. KBS는 현재 2,500원인 TV 수신료(이하 수신료)를 3,800원으로 52% 올리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둔 상태다. 지난 1981년 책정된 이후 줄곧 묶여온 수신료를 올려 받아 ‘적자재정’이란 혹을 떼 내 보려는 행보다.
40년 넘게 KBS가 수신료를 올리지 않고 용케 버텨온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꾸준한 TV 보급률 증가와 제2TV의 광고방송 확대 등이 그 배경에 깔려 있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지난 1994년부터 수신료를 한전에서 전기요금과 함께 공과금처럼 거두어 온 징수제도 개편 덕분이었다. 그 이전에는 꽤나 저조했던 수신료 징수율이 이 개편으로 거의 100% 징수가 가능해진 것이다.
TV 수신료 인상으로 현재 적자인 재무구조를 개선하려던 KBS에 비상이 걸렸다.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민의힘 간사인 박성중 의원이 원내대책회의에서 KBS TV 수신료를 한전의 전기요금 징수와 분리하는 안을 제기하고 나선 것이다.
‘시청자들에게 수신료 납부 거부권을 확보해 줘야한다’며, “민노총 산하 전국언론노동조합이 장악한 KBS는 편파방송으로 공영방송의 본분을 다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세웠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최근 국회 답변에서 “KBS가 한전의 전기요금에 같이 붙여서 수신료를 받는 것은 일종의 편법”이라며, “당연히 국민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쪽으로 개선돼야한다”고 말해 여당의 주장을 거들고 나섰다.
KBS는 수신료 인상은 고사하고 오히려 수신료를 전기요금 징수와 분리하려는 저항에 부딪치게 돼 말 그대로 ‘혹 떼려다 혹 붙인 격’이 되고 만 셈이다. 더구나 최근 프랑스의 ‘공영방송 수신료 폐지법안 하원 통과’나 영국, 일본의 공영방송 수신료 면제 ·인하 방침 발표 등까지 겹쳐 KBS는 ‘안팎곱사등이’ 입장이 되고 있다.
드라마 ‘미남당’ 황당설정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이번에는 KBS가 방영하고 있는 드라마가 말썽이다. 제2TV 월화드라마 ‘미남당’이 구설수 도마에 올라 있다. 먼저 문제를 제기한 곳은 ‘공정방송과 미래비전 회복을 위한 KBS 직원연대’란 다소 긴 이름을 가진 KBS 사내 조직이다.
지금 많은 국내외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보고 있을 것이다. 필자도 물론 TV 다시보기를 통해 문제가 된 제9회와 10회분을 자세히 보았다. 누구나 비슷한 느낌을 받았겠지만, 필자도 ‘드라마에 어떻게 이런 설정을 할 수 있을까?’하는 강한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일단 KBS 직원연대가 낸 성명서를 부분적으로나마 인용해 보자.
“(드라마) 9화는 마약, 성 착취, 살인 등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지른 자를 비호하는 악의 카르텔을 드러낸다. (중략…) (부당한) 압력을 넣는 권력자는 ‘참보수당’의 최고위원이다. CG로 부적을 닮은 명함에 당명까지 친절하게 소개한다. (중략…)
신명시라는 자치단체 시장을 뽑는 선거 날의 풍경이 그려지는데, ‘참보수당’과 ‘새진보당’의 후보들이 대결한다. 개표 상황이 진행되는 과정에 뜬금없이 무당이 나타난다. 무당은 ‘새진보당’ 후보의 사진이 붙어있는 저주 인형을 앞에 두고 굿판을 벌인다.
개표 후반 ‘새진보당’ 후보가 앞선다는 선거방송의 내용이 흐르는 순간 무당은 ‘새진보당’ 후보의 사진이 있는 저주 인형에 삼지창을 꽂는다. 무당의 얼굴에는 핏방울이 튀고 갑자기 ‘참보수당’ 후보가 역전승한다. (중략…)
‘미남당’은 유독 우파와 검찰을 악마화 하느라 바쁘다. 현실에서 좌파가 우파를 공격하는 온갖 코드가 넘쳐난다. 무당은 우파 권력과 연결돼 있다. 재벌과 정치인 검찰이 한 편이 돼 무당과 놀아나고, 성 접대를 받는 것으로 그려진다. 무당이 언급되는 선거에서 보수 정파가 아슬아슬한 차이로 막판 대역전극을 펼치는 모습은 (지난) 21대 대선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드라마 설정과 전개가 이렇다 보니 국민의힘 측에서 발끈하고 나선 것은 당연히 예상된 반응이다. 국민의힘 당 미디어특별위원회가 내놓은 성명의 요지는 이렇다.
“드라마의 원작 웹 소설에는 악역 국회의원의 소속정당명을 ‘국민평화당’이라고 중립적으로 명명했는데, 굳이 ‘참보수당’으로 바꾼 이유가 무엇인지 밝혀라”, “KBS가 가진 정치적 중립 의무 인식이 이 정도인가? 이런 공영방송에 국민들이 수신료를 낼 이유가 없다”,
“KBS 드라마가 보수정당 악마화 설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년 전에 방영된 드라마 ‘출사표’에서도 ‘애국보수당’ 소속 정치인은 그릇되고, ‘다 같이 진보당’ 소속 정치인은 미화된 바 있다. 한 번은 실수일 수 있지만 두 번은 고의다”
그리고는 “이 같은 부적절한 설정이 드라마 작가나 외주 제작자의 독자적인 판단인지, 민노총 언론노조 소속인 드라마센터장이 개입했는지 여부도 국회에서 설명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매를 부르고’ 있는 KBS 뉴스보도나 시사특집 프로그램과 달리 드라마는 창작물의 하나이다. 어느 나라에서도 정치를 소재로 한 드라마에서는 권력을 비판하고 다양한 설정과 비유, 풍자가 동원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어떤 이유로도 신선한 창의력이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번 드라마 제작진은 “변칙과 반칙으로 중무장했지만 정의를 실현하는 주인공과 규칙과 원칙으로 점철됐지만 철저한 자기본위인 악당의 대결을 통해 정의라는 미명하에 사람을 공정하게 판단하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고자 했다”라는 다소 애매한 기획의도를 밝히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드라마가 자유분방해야할 창작물이라 하더라도 만에 하나 기획에서부터 순수성이 훼손되거나, 드라마를 빙자한 특정 정파에 대한 고의성 편들기나 음해 의도 등이 끼워 드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번 KBS 드라마 ‘미남당’의 기획의도가 어떠하든 드라마 방영 중에 이미 KBS 내부에서 지적과 항의성명이 나온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는 일이다. 더구나 TV 드라마를 놓고 특정 정당에서 특위를 열고 규탄성명서를 내놓는 것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드라마 기획에서부터 제작, 방영 과정에 이르기까지 층층이 쌓이다시피 한 담당 PD, 부장, 국장, 센터장, 본부장들은 이 같은 물의를 전혀 예견할 수 없었는가?
지난 세월, KBS는 ‘편파 · 왜곡 보도의 첨병’이니 ‘정권의 나팔수’니 하는 숱한 비난과 함께 시청자와 국민들로부터 질타와 수모를 받아왔다. 공영방송 KBS의 낯 뜨거운 흑역사다. 지금까지 그 화살의 표적은 대부분 뉴스나 시사 프로그램이었다.
어쩌다가 이번엔 드라마까지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을까? KBS 출신인 필자도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KBS 스스로의 ‘매 벌기 곡예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