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이민자의 나라’라 불리는 미국을 입안에 넣고 톡하고 깨물면 어떤 맛이 날까? 건국 250년이 채 되지 않았지만 어느 덧 세계 최강으로 우뚝 선 이 신대륙을 여행하거나 방문했던 사람들이라면 저마다 느낀 맛은 다를 것이다.
필자 역시 예외가 아니다. 지난 6월 1일부터 8월 20일까지 80일간 애틀랜타라디오코리아(ARK)의 초청을 받아 미국에 머물렀던 필자는 조지아 주를 비롯해 플로리다, 테네시, 사우스와 노스캐롤라이나, 버지니아 등 동남부를 둘러보며 모처럼 미국을 음미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석 달 동안 미국에 머물며 한미양국 간 차이를 몸소 느낄 수 있었는데 때론 달콤했고 때론 씁쓸했다.
그런 와중에 우직하게 전통을 고집하는 우리네 종갓집에서 빚어낸 구수한 된장 같은 맛을 보기도 했다. 먼저, 모터사이클의 고속도로 통행을 꼽을 수 있다. 20년 바이크 마니아인 필자는 미국의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모터사이클을 보곤 마냥 부러워했다. 왜냐하면 이곳에선 250CC 이상 대형 바이크의 고속도로 통행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일본이나 유럽도 고속도로에 바이크가 진입할 수 있다. 반면 한국에선 소형이든 대형이든 바이크가 고속도로를 절대 주행할 수 없다.
전통고수하며 폭넓은 자유 향유 모터사이클 고속도 통행 부러워
안전상의 이유로 불허하고 있다. 그렇다면 선진국은 왜 바이크의 고속도로 통행을 막지 않았을까? 안전을 지킨다면 모터사이클 역시 똑같은 교통수단으로 인식한 것이다. 이러한 규제는 결국 국내 바이크 산업의 성장을 가로 막았다. 스쿠터를 포함해 모터사이클 대부분은 미국, 일본, 유럽 등지에서 수입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둘째, 필자가 머물던 조지아 주에선 쓰레기 분리수거를 안 한다. 종이, 플라스틱 등 재활용품이나 폐기물, 음식물도 그냥 한꺼번에 버린다. 미국은 온실가스 규제 등을 주도하는 지구촌 환경지킴이를 자임하고 있지만 정착 자국 한 켠에서는 쓰레기를 아무렇게나 다루는 것이다. 타운하우스 단지에 주2회 수거차량이 들어오는데 쓰레기를 어떻게 버리든 절대 뭐라 안하고 수거해 갔다. 우리 같으면 난리가 났을 텐데 정작 그들은 아주 편하게 즐긴다.
셋째, 예상과 달리 가계수표(Check)를 즐겨 쓴다. 금융선진국답지 않은 모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자기앞수표는 물론 가계수표는 이미 박물관의 유물 수준인데 반해 미국에선 여전히 인기 품목이다. 물론 미국인들도 음식점이나 편의점, 주유소, 마트 등에서 현찰이나 신용카드를 쓴다. 그러나 중요한 건 가계수표가 상거래의 보조가 아니라 중심이라는 점이다. 이걸 못하면 미국생활을 포기해야 한다.
월급을 주거나 물품을 구매할 때 가계수표를 발행하는 게 일상사다. 흥미로운 대목은 축의금이나 조의금도 절반가량은 가계수표로 낸다. 이런 모습은 미국의 복잡한 금융시스템이 빚어낸 결과다. 실제로 미국의 은행은 엄청 많은데 은행 간의 이체는 젊은이도 힘들만큼 무척 까다롭다. 특히 타은행 거래는 아주 복잡하고 번거롭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앓느니 죽는다’고 그냥 전통적인 방법인 가계수표를 쓰는 것이다. 또 카드는 보안에 취약하고 수수료도 내야 하기에 적지 않은 불편을 느낀다.
마지막으로 집배원에 대한 따스한 배려가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미국의 주택 앞에는 우체통이 있다. 대개는 지상에서 1.2m 정도로 세워져 있다. 근데 우편물을 배달하는 우체국 차량이 좀 이상하다. 좌측이 아닌 우측에 핸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같이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이기에 모든 차의 핸들은 좌측에 있어야 맞다. 그러나 우체국 차는 예외다. 집배원이 차에서 내리지 않고 우체통에서 우편물을 꺼낼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구글, 애플, 아마존, 페이스북, 자율주행, 우주개발 등 미디어에 비춰진 미국은 최첨단만을 쫓는 지구촌 맏형 같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들은 폭넓게 자유를 향유하고 사소함에도 이웃을 배려하며 우직스럽게 전통을 고수하는 소시민의 모습도 엿볼 수 있었다. 아무튼 필자가 석 달 동안 이민자의 나라에서 머물며 단맛, 쓴맛, 신맛, 짠맛에다 구수한 장맛까지 음미할 수 있었던 까닭에 미국이란 나라는 참으로 오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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